사전적으로 정의된 단어는 아니나 선거와 관련하여 사표심리라는 것이 있다.
선거 결과에 낙심해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속세를 떠나겠다는 의미가 아닌 ‘나의 소신에 맞는 후보자가 있어도 대중적 인지도가 낮아 당선가능성이 없으므로 1위 가능성이 높은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을 말한다(영어식 표현으로 밴드왜건 효과라고도 한다).
반면 ‘사표’라는 단어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낙선한 후보자에게 던져진 표’라고 정의되어 있듯 제도권 언어의 한 부분이라 말할 수 있으며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는 그 비율(1위 이외의 12명 후보자의 득표율)이 58%가 넘어 상당한 위용을 과시한 바 있다.
결코 의미 없는 표가 아님에도 왜 이러한 죽음을 의미하는 섬뜩한 사전적 정의를 내렸는지 편찬자에게 항의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나 문리해석에 대한 천착은 또 다른 곡해를 낳을 수 있기에 영화 ‘부산행’의 속편이 촬영되고 있는 의사당의 혼란을 목도하고도 결연한 의지로 취임 연설문을 읽어 내려가는 미국 대통령의 모습에서 재해석의 영감을 얻을 뿐이다.
‘저는 저를 지지하셨던 국민들을 위해서만큼, 지지하지 않으셨던 국민들을 위해서도 투쟁할 것임을 약속합니다.’
사표(死票)는 의미 없는 죽은 표가 아닌 죽을힘을 다해 통합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라는 당선자에 대한 유권자의 진지한 편지였음이 태평양 건너에서 다시금 증명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세상에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는 것은 없다는 주장을 견지해 왔으며 무용지물이란 사자성어는 그 자체가 무용지물임을 사표가 말해주었으므로 그 주장은 더욱더 공고해 졌다.
우리 신체기관의 기능을 원용해 나의 주장에 힘을 더 보태보고자 한다.
눈은 보는 기관이며, 귀는 듣는 기관이며, 코는 냄새를 맡은 기관이며, 입은 음식을 섭취하는 기관이니 생리작용에 있어 모두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눈썹만은 예외지만 말이다.
미용차원에서 밀어버리는 사람도 있으니 자칫 조물주의 잉여생산물로 취급받을 수도 있는 것이 눈썹의 지위인 것은 사실이나 관상학이나 이미지관리 영역에서는 나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요즘 유명 정치인을 포함하여 중년남성의 눈썹문신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눈썹의 유용성을 사뭇 실감할 수 있다.
이러한 속성을 간파해 백미(白眉: 흰 눈썹이라는 뜻으로, 여럿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훌륭한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라는 말로 눈썹의 자존감을 높여주었던 선인들의 지혜가 놀라울 뿐이다.
사표의 기능은 민주주의란 얼굴의 눈썹과도 같은 존재이다.
역할은 미미해 보이나 그것의 기능 없이는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초상화는 항상 미완일 수밖에 없다.
당선자는 1명이나 유권자의 모든 표는 1등이어야 한다는 공감대의 형성이 사표라는 눈썹의 잠재적 역량을 극대화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전제의 실현은 소신에 의한 투표로서 실현되고 심리작용에 의한 편승투표와는 거리가 멀다.
사표는 취하되 사표심리는 버려야 올바른 투표와 정책선거가 실현된다.
4. 7. 재·보궐선거의 투표장엔 어김없이 백색의 투표용지와 백색의 투표함이 있을 것이다.
항상 그래왔듯이 선거의 백미(白眉)는 역시 투표일 수밖에 없다